○○○ 님께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아니, 잘 받았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처음 편지를 읽던 날,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답장을 쓰기 위해 이 편지를 다시 꺼내 읽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으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시 펼치면 그때의 기억과 지금의 제 마음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아 두렵지 않았나 싶습니다. 답장이 늦어진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의사는 환자분들의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하지만, 그 이후를 알게 되는 일은 드뭅니다. 병동으로, 집으로 돌아가시고 나면 그분들이 어떤 삶으로 돌아가셨는지 모른 채 지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 님이 잘 회복하셔서 일상을 살아가고 계시고, 둘째까지 태어나 두 아이의 아빠가 되셨다는 소식은 제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격리실 안에서 그렇게 긴 시간을 견디고 계셨다는 것을 편지를 읽고서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수없이 놓아버리고 싶으셨을 텐데, 그 시간을 끝내 버텨낸 것은 ○○ 님 자신입니다. 저는 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고, 밤낮으로 곁을 지킨 중환자실 식구들과 무너지지 않고 기다려 준 가족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삽관이나 에크모는 꽂는 것보다 떼어내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 에크모는 모교보다 여기가 더 잘한다던 너스레까지 기억해 주셔서 웃음이 났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말은 ○○ 님께만 한 말이 아니라 저 스스로에게 하던 다짐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씩 떼어내고, 결국 아무것도 달지 않은 채 걸어 나가시는 것. 중환자실 의사가 바라는 건 늘 그것 하나입니다. 그 일을 ○○ 님이 해내셨습니다.
사실 이 편지를 받았을 즈음 저는 조금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많은 환자분들을 보며 쉼 없이 달려오다 어느 순간 힘이 다해, 지금은 조금 더 작은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진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 님의 편지를 읽으며 제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그 고단했던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더 많은 환자분들 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도 이 편지 덕분입니다. 그때 제가 ○○ 님을 붙잡아 드렸다면, 이번에는 ○○ 님의 편지가 저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후유증으로 여전히 불편하신 부분이 있다고 하셔서 마음이 쓰입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가까운 병원에서 꾸준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두 아이, 가족분들과 함께하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를 영웅이라 불러 주셨지만, 그 시간을 이겨내고 이렇게 편지까지 써 주신 ○○ 님이야말로 제게는 더 큰 사람입니다. 감사 인사가 늦었다고 하셨는데, 전혀 늦지 않았습니다. 꼭 필요한 때에 도착했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2021 COVID19 당시 진료 보았던 환자에게서 온 편지에 답장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