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e to 잠실 제1수영장

잠실 종합운동장 제1수영장이 오늘로 문을 닫는다.

이 수영장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공사는 1977년에 시작됐고, 1980년 12월 30일, 종합운동장 시설 가운데 가장 먼저 완공됐다. 주경기장보다도, 야구장보다도 먼저였다. 처음부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바라보고 지은 곳이라 준공 당시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최신식 실내수영장으로 꼽혔다고 한다. 1986년 아시안게임의 수영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수영과 다이빙, 수구 경기가 모두 이 물 위에서 치러졌다. 지금 내가 허접한 폼으로 연습을 하던 레인에서 누군가는 올림픽 메달을 걸고 헤엄쳤다니.

올림픽이 끝난 뒤 이곳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민 수영장이 되었다. 국제 규격의 50미터 레인과 다이빙풀은 그대로 남았고, 그 위로 40년 넘게(!) 강습반과 자유수영 시간이 이어졌다. 아침 첫 타임에 새벽같이 들어서는 사람들, 퇴근하고 들르는 사람들, 각종 강습을 위해 오는 사람들. 경기장으로 지어진 곳이 동네 수영장이 되어 그만큼의 세월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종합운동장 일대 재개발 공사로, 인해 2026년 10월의 마지막 날 그 시간이 끝난다.

캘린더를 확인해 본다. 내가 여기에 다니기 시작한 건 2025년 10월 10일이다. 그러니까 꼭 1년 1개월을 다닌 셈이다. 처음엔 초급반이었다. 처음 다닐 때의 그 낡은 시설의 느낌이 나는 좋았다. 일년 동안 한 칸씩 밀려 올라가 지금은 고급반에 있다. 실력이 늘었다기보다는 정말 밀려 올라갔다는 표현이 맞다. 그래도 못하던 접영을 흉내나마 낼 수 있게 된 건 분명한 변화다. 여러 모를 거쳐, 수영장을 열심히 다니는 아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 시간이었다.

금요일인 어제는 마지막 강습을 마쳤다. 강습을 마치고 집에 걸어가는 길에 강사님이 짐을 정리하기 위해 박스 같은 걸 들고 차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싣고 계시는 걸 보았다. 우리 반 강사님은, 최근 같은 반 어르신들께 ‘은퇴하고 할 일 없으면 느낌이 어떤가요?’ 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 날은 웃어 넘겼는데, 오늘은 웬지 그 말이 생각나니 웃음이 오히려 없어진다. 고작 1년 남짓 다닌 나도 마지막이라니 마음이 조금 울컥한다. 오전반에서는 한 할머니가 이제 죽어서나 만나겠다고 하시는 말에 강사님이 울어버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웃으면서 하신 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울었다는 게 그 자리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고급반에는 27년을 다니신 할아버지들이 있다. 27년이면 내가 다닌 시간의 스무 배가 넘는다. 그분들에게 이 수영장은 운동하는 곳이라기보다 하루의 일부였을 것이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로 와서 같은 레인에서 같은 사람들과 헤엄치는 일. 1년의 나도 이런데, 27년의 그분들 마음은 어떨까.

그분들 가운데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분이 많다. 꼭 50미터 풀이 아니어도 되는데도, 다른 수영할 곳을 새로 찾는 일 자체가 그분들에게는 큰 벽이다. 새 수영장은 강습 등록부터 경쟁이고, 시간대도 맞춰야 하고, 낯선 곳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 젊은 사람에게는 귀찮은 일 정도지만, 나이 든 분들에게는 그만두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여든에 가까운 한 분은 다른 데를 찾기 어려우니 이제 수영은 그만하시겠다고 했다.

수영장이 문을 닫는다는 건 건물 하나가 사라지는 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누군가의 운동이, 누군가의 아침 루틴이, 누군가의 수십 년 된 인간관계가 함께 끊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손실은 통계에도, 공사 계획서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게 어떤 모양으로 다가올지는 아마 그분들만 알게 될 것이다.

떠도는 말로는 새로 짓는 수영장은 50미터가 아니라 25미터 풀이 될 거라고 한다. 운영도 서울시가 아니라 외주로 맡긴다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25미터 풀이 강습을 돌리기에 더 효율적이고,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면 그게 맞는 계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25미터와 50미터는 엄연히 다르다. 50미터를 한 번에 가는 것과 25미터를 두 번 가는 것은 같은 거리여도 다른 수영이다. 그리고 50미터 풀은 만들어 두면 대회도, 훈련도, 나중에 25미터로 나눠 쓰는 것도 가능하지만, 25미터 풀은 그 반대가 안 된다. 올림픽을 치렀던 자리, 서울에서 손에 꼽던 50미터 풀이 있던 자리를 25미터로 줄이는 건 조금 아쉬운 기획이 아닌가 싶다.

바로 옆 학생수영장(같은 종합운동장 부지에 있지만 교육청 소속 건물이라고 한다)은 사정이 다르다. 주경기장 남서쪽에 새 학생체육관을 2024년 여름부터 먼저 짓고 있고, 내년 2월 준공해 상반기에 문을 연다. 50미터 10레인 수영장에 다이빙장까지 갖춘 곳이다. 새 수영장을 먼저 세워 두고 옮겨 가는 방식이니,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공백이 거의 없다. 프로들이 운동하게 될 곳이라 더 신경써서 일을 진행한 느낌이 든다. 교육청 발표에는 새 체육관을 평일에는 학생 체육교육 공간으로 쓰고(학생 신분인 프로 선수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방과 후와 주말에는 시민들에게 생활체육시설로 개방할 계획이라고 하니 조금 지켜볼 일이다. 조금이라도 제1수영장에 다녔던 분들에게 위로가 되는 계획이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