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의 밤 당직이 끝난 아침의 이야기이다. 그는 오전 10시에 교대하고, 퇴근길을 따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가볍게 점심을 먹고, 그는 오후 2시에 시작할 강습을 준비하였다. 수건, 물안경, 수모, 수영복, 그리고 회원 카드. 가방을 닫는 순간, 문득 질문 하나가 그를 찾아왔다. 나는 왜 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물에 가는가.
그는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응급실에서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가까운 일이라고, 그는 오래도록 믿어 왔다. 환자의 몸을 보고, 그 너머의 사정까지 읽어내는 일. 그의 이해가 늦어지면 어디선가는 반드시 문제가 생겼다. 그의 면허, 환자의 목숨, 그리고 보호자의 지갑에 이르기까지. 문제는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였다. 의대에서 수련의와 전공의를 거치는 11년 동안, 그는 이성과 분석을 끊임없이 반복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이해는 이제 본능의 언어로 말하였다. 생각하기 전에 움직이고, 보기 전에 의심하였다. 그의 이해는 본질적으로 분석적이었고, 또한 객관적이었다.
그러나 그 분석과 객관의 시선은 그의 아내에게 가 닿지 아니하였다. 집안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로, 혹은 마무리할 계획조차 없이 수영을 가는 그녀를 그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어린이가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지쳐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 시간에 물에 가는 그녀를 그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가 번아웃과 과로로 무너져 갈 때에도 그녀는 그의 이야기와 상관없이 수영을 갔다. 그때에도 그는 여전히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역시 내가 고른 아내란 말이지, 그는 생각하였다. 쉬운 게 하나도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되지 않는 치료를 계속하는 의사는 없다. 그는 새로운 전략을 택하였다. 그녀가 탐닉하는 것을 그도 똑같이 겪어 보기로 한 것이다. 너만 좋은 것을 하느냐, 나도 좀 하자. 그는 새벽의 예약 알림을 기다렸고, 경쟁 끝에 겨우 집 인근 수영장 초급반의 한 자리를 얻었다. 어린 시절 스포츠단에서 익힌 자유형과 배영을 기억하며, 그는 자신 있게 첫날의 물가에 섰다. 그리고 몸을 담그는 순간, 그는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물속은 고요하였다. 귀가 막히고, 소리가 멀어지고, 눈에는 흐릿한 푸른빛만이 남았다. 그 안에서 팔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리가 얼마나 차야 하는지를 그의 머리는 알고 있었으나, 그의 몸은 알지 못하였다. 어깨의 각도를 계산하는 순간 팔꿈치가 틀어졌고, 발차기의 타이밍을 따지는 사이 몸이 가라앉았다. 분석이 끼어드는 순간, 그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가라앉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해보다는, 같은 경험을 통한 공감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나의 이해는 그렇게 머리 밖으로 뛰쳐나가, 물 아래로 흩어졌다.
물 밖에서 나는 여전히 그였다.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는 사람, 늦으면 문제가 생기는 사람. 그러나 물에 들어가는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그를 벗었다. 계산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뜬다는 것을, 분석을 멈추어야 비로소 나아간다는 것을 몸이 먼저 배워 갔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 사이의 그 먼 거리를, 나는 매주 두 번씩 물속에서 좁혀 나갔다.
몇 달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수영에 능숙하지 않고, 턴을 할 때마다 물을 먹는다. 하지만 아내가 수영을 가겠다 채비를 할 때, 나는 더 이상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집안일이 끝났는지, 아이는 괜찮은지, 나는 묻지 않는다. 그것을 온전히 이해해서는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안다. 물에 들어가면 모든 분석이 잠시 가라앉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 시간은 단순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묻는 대신, 그녀의 가방이 닫히는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그 소리가, 오래전 내 가방이 닫히던 소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